미학오디세이 (ft. 원시예술 속 주술적 신앙의 비밀?)
진중권의 미학오디세이를 읽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 이르길, 미학은 미와 예술, 미적인 것에 대한 사상을 탐구 대상으로 다루는 학문이다. 모든 아름다움은 보편성을 전제로 하는데, 미학은 그러한 아름다움의 보편성의 원인을 밝히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체제를 구축해 낸다. 대표적으로 미학적 체제를 구축한 이가 헤겔이다. 헤겔에게 예술이란 세계 속에 던져진 정신이 실현되는 과정이 새겨내는 결과물이었다. 이가 미학적 체계에도 적용된다.
우리가 어떤 영화를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꼈을 때, 그 영화는 사람들이 시대를 겪어나가며 겪은 감각들을 상징과 서사를 통해 재현해 낸 것이다. 즉, 헤겔이 말하는 시대정신을 새겨나가는 것을 영화라는 예술로 표현하게 되며, 아름다움이라는 미학으로 승화시킨다.
진중권의 미학오디세이는 미학을 대중화시키기 위한 목적에 의해서 쓰였다. 그는 원시 시대, 고대시대 중세시대, 근대시대로 시대 별 미학의 내용을 얘기하며, 사상적 측면도 포스트구조주의(탈구조주의, 데리다의 해체 이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담론까지 다양하게 다루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원시 시대의 앞부분과 관련하여 적어보겠다.
흔히 우리는 사물을 지각할 때, 오로지 눈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개념적 사유를 하는 인간은, 사물을 볼 때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지의 도식을 적용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시지각자체가 벌써 개념적 사유라는 색안경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에 반해 미학오디세이에서는 구석기시대 원시인들은 아직 개념적 사유가 시지각을 지배할 정도까지 발달하지 않았다고 얘기한다. 바로 이 때문에 그들은 개념적 사유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연을 보이는 대로 그릴 수 있었다. 개념적 사유로 무장하지 못한 이 벌거벗은 눈이야말로 그들의 놀라운 자연주의를 설명해준다. 결국 우리는 구석기인의 높은 수준의 자연주의가 그들의 낮은 수준의 지적 능력을 증명한다는 역설에 이르게 된다.
또한 구석기인들은 들소 이미지를 죽이는 의식을 통해 진짜 동물을 잡을 수 있다고 믿었다. 여기에는 가상을 통해 현실의 소망을 이루려는 주술적 신앙이 적용된다. 이와 관련하여, '영화 늑대와 춤을' 에 나오는 수족의 한 인디언은 어느 탐험가가 들소를 스케치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불평했다. 저 사람이 들소 여러 마리를 자기 책 속에 넣어 갔다. 그때부터 우리는 들소를 구경할 수 없었다.
미학오디세이는 이러한 주술이 실제로 효험이 있었다고 말한다. 동굴 벽화는 원시인들이 경험에서 얻은 동물에 관한 모든 지식을 담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구석기 벽화가 그토록 뛰어난 사실성을 보여주는 것은 동물을 쫓는 예리한 사냥꾼의 눈으로 관찰했기 때문이다. 동물의 동작과 해부학적 구조에 대한 지식, 가량 급소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들은 그들의 생존에 필수적인 지식이었다. 이에 당연 주술적 행위를 할수록 구석기 인들은 실질 사냥 기술을 익힐 수 있었고, 더 많은 사냥물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미학오디세이는 다른 비슷한 예로 수렵무를 제시한다. 수렵무는 사냥꾼으로 분장한 한 무리의 춤꾼과 동물 가죽을 뒤집어쓰고 동물 역을 하는 또 한 무리의 춤꾼이 등장하여, 사냥을 떠나서 돌아올 때까지의 전 과정을 격렬한 춤으로 재현한다. 그들이 이 춤을 추는 것은 더 많은 동물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주술적 신앙 때문이었다.
이 역시도 실제로 효과가 있었던 것은 이 춤을 통해 그들은 사냥의 절차와 테크닉을 반복 학습할 수 있었다. 또 언제나 승리로 끝나는 극의 구조는 사냥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넣고, 격렬한 동작은 사냥에 필요한 신체 단련을 대신해주었다. 이처럼 미학오디세이 책은 흥미로운 부분이 가득하다. 읽으면 읽을수록 나의 눈길이 절로 멈춰지는 부분이 잦았다. 잠깐 읽고 다른 일이 있어 덮었지만, 소중한 것은 아껴두는 것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앞으로도 시대별로 나올 미학 이야기에 흐뭇한 생각이 가득해져 좋기만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