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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명상, 요가, 단전호흡

자아가 있다? 없다? 아니면 다중자아?(이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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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라는 것은 실재하는 것일까? 
우리는 흔히 내면의 내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때때로 내면의 소리를 듣고 이 소리를 키우기위해 명상을 행한다. 어떤 이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내면 넘어에 있는 것을 보기위해 초월명상도 행한다. 


불교에서는 자아가 없는 것이 진실이다. 불교에서 오온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색(form), 수(feelings), 상(perceptions), 행(thoughts), 식(consciousness)를 말한다. 이들의 상호작용이 자아의 환상을 만들어 낸다고 불교는 얘기한다. 그러므로 불교에서의 진리는 자아가 없음을 알고 탈개인화(해탈)을 최종목표로 정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예전 수잔 시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한 말을 인용하자면 "나는 버스에 올라 타려고 오른발을 들었고 조용히 폭발하는 다이너마이트처럼 나의 의식에 들어온 보이지 않는 힘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이 힘은 나의 평소 의식의 문을 열고 경첩을 날려버려 나를 둘로 나누어 버렸다. 갑자기 나타난 공간에서, 이전에 나라고 불렀던 것이 내 안의 위치에서 강제로 빠져나와 내 머리 왼쪽 뒤로 약 30cm떨어진 곳의 새로운 위치로 밀려났다. 나는 이제 내 몸 뒤에서 내 신체의 눈을 사용하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후 수잔 시걸은 또 말했다. "모든 것이 내 눈 앞에서 끊임없이 사라지는 것 같다. 공허함이 도처에 있었고, 내가 쳐다보는 모든 얼굴들의 숨구멍을 통해 스며들며, 단단한 것처럼 보이는 물체의 틈 사이로 흐로고 있었다. 몸과 마음, 말, 생각, 감정은 모두 비어 있었고, 이들을 소유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전에 내가 알고 있던 모든 현실 관념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수잔시걸의 위 말들에 따르면 그녀는 자아 분리를 경험한다. 그리고는 공허함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이에 대해 불교의 현자들은 축하를 보낸다. 불교의 최종 목적인 탈 개인화를 이루었고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얘기한다. 처음에는 많은 두려움이 있을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두려움도 자아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빈 자각 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 이야기한다. 


하지만 수잔시걸이 축하받는 것과는 별개로 그녀의 말로는 좋지 못하다. 그녀는 불교계 거인들의 말처럼 사라졌던 두려움이 새로이 더 강렬하게 찾아왔으며 은둔 생활을 했다. 이후 1997년 뇌종양으로 그녀는 사망했다. 


이는 자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녀는 진정 깨달음의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사고로인해 뇌에 이상이 생긴 것일까? 자아의 개념은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없다고 보는 것이 진리인 것인가? 등 많은 의문을 남긴다. 


이에 관해 다른 측면으로 헉슬리라는 사람의 이론을 보자. 헉슬리는 모든 사람은 지금까지 각자에게 일어난 모든 것을 기억하며 우주의 모든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지각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신경계와 뇌의 기능은 방대한 양의 불필요한 관련 없는 지식에 압도 당하거나 혼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리의 정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생물학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 모든 곳에 있는 정신은 뇌와 신경계의 가치를 감소시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행성에서 살아남기 위한 미미한 의식만이 도출된다.   


헉슬리에 따르면 우리 자아는 불교에서의 해석과는 달리 존재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존재하는 것 뿐아니라 참으로 강렬한 존재여서 우주의 모든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지각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단지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 그것이 억제되고 있을뿐. 


자아가 있다. 없다. 헉슬리의 이론, 불교의 이론 어떤 것이 맞는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경험한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 특별히 명상 중이 아니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객관화해서 바라다 볼 수 있다. 이것이 심해지고 어떤 정신적 외상을 겪는다면 이인증(이중인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적으로 이인증은 현대에서 정신병으로 치부되는 부정적 성향이 강하다. 


그러나 예술세계에서는 이인증은 걸작을 만들 수 있는 긍정적인 면도 보일 수 있다. 피카소가 얘기하길 "사과를 그릴때면 사과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을 객관화시키고 흔히 말하는 문학적 표현으로 감정이입 능력이 뛰어나진다고 자아분열을 해석하면 정신분열이라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너무 가혹한 것일까?


그들의 고통을 겪어보지는 않아서 모르겠지만 자신이 아닌 자신이 또다시 되는 것에 공포를 느낄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더불어 오는 고통도 충분히 예상이 가능하다.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 짓겠다. 자아가 있다. 없다. 그리고 다중 자아.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든 자신이 상정하는 것에 따라 있을 수 있다. 자신이 자아가 있고자 하면 있는 것이고 자아가 없고자 탈개인화를 추구하면 이에 관해 도를 구하면 된다. 때때로 다중자아상을 자의든 환경탓에 어쩔 수 없게 가지게 되었든 이 모든 자아상을 인간은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다. 어떤 것이 진리다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이 가진 어쩌면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수수께끼로 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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