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 게임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마스터 게임은 세상을 상위 게임과 하위 게임으로 나누어 보고, 깨달음을 추구를 하는 마스터 게임을 우리 참가자가 행해야 할 가장 이상적인 상태라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책을 보면 볼수록, 이 책에서 환상일 뿐이라 치부하는 현실 세계에 대한 미련이 많이 남습니다. 책은 해탈로 이르는 주의 자각만을 최고의 가치로 치부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해탈의 관점에서 보면, 다 찰나적이고 부질없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깨닫고 모든 집착과 아집을 내려놓는 것이 해탈의 필수 과정이라는 것은 알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속에 속한 저라는 존재는, 이 사회 안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나가는 것도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니체와 같은 똑똑한 사람들이 염세주의적 세계관을 가지게 된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갑니다. 책에 따르면 인생의 한계들에 대한 끔찍한 자각을 한 것이지요. 예술가는 자신의 예술에 환멸을 느끼고,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결과에, 전도사는 자신의 설교와 자신의 종교에, 사업자는 자신의 사업에 환멸을 느끼게 됩니다. 얼마 전 중학교 동창이 수학가로서 최고의 영예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필즈상을 받았는데, 그도 삶을 더 살아간다면 이처럼 환멸을 느끼게 될까요?
명상론적으로 에르하르크 톨레나 존카밧진은 현실에서 이 순간을 최대한 느끼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자각하고 깨달으라고 말하는데, 위와 같은 해탈적 관점과는 사뭇 다른 것 같습니다. (쓰다 보니 해탈적 관점을 취하면 염세주의로 연결된다라고 변질된 것도 같네요. ;; 부처님은 해탈을 통해 중생에 대해 자비심을 가졌으니 염세주의는 당연 아닐 텐데요.) 어디까지나 현실이 거짓 자아에 이끌려 자신의 자유를 박탈할 여지가 있지만(가짜 자아에 동일시), 달리 말하면 진짜 세계가 아닌 마야의 환상(플라톤의 동굴 비유)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다는 것에 제게 있어 더 안락함을 가지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탈적인 관점을 계속 공부해나가는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도 앞서 말씀들인 인생의 한계 중 하나라고도할 수 있겠네요.
책을 읽으면서 상위 게임들 말고 하위 게임들인 인생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부와 명예, 영광, 승리가 본질적으로 치명적 결점들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알겠으나 처음 밝힌 것처럼 아직 이것들을 놓지 못하겠고, 아직 더한 공부가 필요할 듯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