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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나무위키 요약(ft. 소크라테스의 아내가 악처가 아니라 현처? 테스형의 제자는 나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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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나무위키 요약(ft. 소크라테스의 아내가 악처가 아니라 현처? 테스형의 제자는 나훈아?)

소크라테스는 나훈아의 저번 2020년 콘서트 이후 테스형이라는 노래로 장안에 화제가 되었다. 이에 나훈아가 소크라테스의 제자라는 우스개 소리도 나온다. 이에 소크라테스의 일생과 사상, 그리고 주변 이야기들을 나무위키를 보고 축약해본다. 나무위키의 전문을 보는 것이 더 상세하게 알 수 있겠지만, 해당 글을 보면 요약이기에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면에서 좋으리라 본다.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69년에 고대 그리스 아테네이서 출생하였다. 사망한 연도는 기원전 399년 경이다. 소크라테스는 수많은 명언을 남겼지만,  그중 너 자신을 알라 (그리스어로는 그노시 씨아똔이며 그리스의 델포이 신전 안의 기둥에 새겨진 글씨이다.)와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가 있다. 

이런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은 플라톤, 크세노폰, 알키비아데스, 크리티아스, 아리스티포스(키레네 학파 창시), 안티스테네스(키니코스학파 창시자 디오게네스의 스승) 등이 있다. 사실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저술이나 일기를 남기지 않았기에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그의 삶과 사상은 그의 제자나 지인들의 책들에서 간접적으로만 알 수 있다. 


먼저 소크라테스의 삶이 어떠했는가에 대해 알아보겠다. 외적인 면모는 못생겼었지만, 석공출신으로 건강한 몸을 지녔다. 신발은 신지 않고 옷은 누더기 같은 옷을 입었었다. 옷은 왜 누더기이며, 신발은 왜 신지 않는 것인지에 대해 누가 물으면, 이는 정신력 단련에 좋으며 익숙하고 편해서 그렇다고 얘기했다. 잔치 자리 가면 술을 많이 마시고도 늦게까지 토론을 할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이 있었다. 심지어 전쟁터에서도 배고픔, 추위, 적군 등에 동요치 않는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는 강한 정신이 있었다. 게다가 때때로 소크라테스는 어떤 답을 찾고자 할 때는 밤낮없이 가만히 서서 몇 시간이고 사색하여 답을 찾고야 자리를 떠나는 기인이다.    

소크라테스 나무위키, 나훈아의 테스형노래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는 못생긴 악처라 알려져 있지만, 사실 현처였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집안 살림, 석공소 운영도 남편 대신 다 했으며, 돈도 없으면서 밤낮으로 사색이나 토론만 하는 소크라테스를 내쳤다는 기록도 없기 때문이다. 크산티페는 다혈질이라 소크라테스를 구박도 하고 물을 뿌리기도 했지만, 위가 같은 정황을 볼 때 소크라테스가 한 말 중 '효자보다 악처가 낫다' '젊은이여, 결혼하라. 좋은 처를 얻으면 행복할 것이고, 악처를 얻으면 철학자가 될 것이다'라고 한 것은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소크라테스는 평생 전쟁에 세 번 참전한 것과 포세이돈을 위해 열리는 대축제인 이스트미아 제전을 구경하러 간 것, 총 4 번만 아테네를 벗어났었다. 이는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독백에 의하면, 아테네만으로 소크라테스에겐 충분한 세상이었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소크라테스는 가난했다. 일을 한다는 것이 철학자의 삶과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는 일도 없이 시장이나 광장을 돌며 사람들을 붙잡고 철학적 질문을 했다. 이런 소크라테스의 등장 계기는 사람들이 소피스트의 궤변, 상대주의에 빠지는 모습을 보며 이에 반발하면서부터이다. 상대방에게 계속 질문을 하는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산파술, 산파법)은 사람들이 자신의 무지를 깨닫게 하는 방법이었다. 산파술은 특정 해답을 제시해주는 않지만, 이로 인해 기존의 개념들(도덕에 기반한 경건함, 선함, 좋음 등)은 명확해질 수 있다. 

소크라테스 나무위키, 나훈아의 테스형노래


한편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무지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말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말로 여겼기에 중국의 공자가 얘기한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 진정한 앎이다'라는 말과 비슷한 맥락인 것은 흥미롭다.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해 서술하고 글을 맺겠다. 소크라테스는 대표적 죄목은 아테네의 종교적 권위, 가부장적 전통 무시하고, 아테네에 폭군들을 키워냈다는 것이다. 종교적 권위를 무시한 것은 소크라테스가 직접 점을 치고, 제단에서 직접 제사를 지냈다는 것이고, 가부장적 전통을 무시한 것은 소크라테스가 부친을 바보로 알도록 만들었다는 것, 폭군들을 키워낸 것은 크리티아스가 아테네에 학살과 재산 몰수를 마음대로 하며 폭정을 한 것을 일컫는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고발당하고 재판을 거쳐 사형당한다. 이에 그의 제자 플라톤은 직접민주제가 타락하면 중우정치가 될 수 있다고 비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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