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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상식, 이슈

테스형, 국민가수 나훈아 상세프로필 (ft. 테스형 뜻 유래? 나훈아는 싱어송라이터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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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테스형의 뜻부터 말하자면, 테스형은 소크라테스를 친근하게 표현한 단어이다. 테스형은 노래 제목인데, 가사는 다음과 같다. 

<태스형 노래 가사>
울 아버지 산소에 제비꽃이 피었다. 
들국화도 수줍어 샛노랗게 웃는다. 
그저 피는 꽃들이 예쁘기는 하여도
자주 오지 못하는 날 꾸짖는 것만 같다. 
아! 테스형 아프다 세상이 눈물 많은 나에게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세월은 또 왜 저래
먼저가본 저세상 어떤가요 테스형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 테스형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테스형, 나훈아


2020년 콘서트를 계기로 다시금 화재가 된 나훈아, 그리고 테스형.
나훈아는 이번 2020년 콘서트가 15년만의 귀환이라고 하는데, 이번 콘서트도 대성공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방송에 잘 출연하지 않아 나훈아의 공연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일종의 나훈아만의 은둔 활동이 희소성을 높인다는 평도 있다. 

 

테스형, 나훈아노래


이제 본격적으로 그 테스형, 나훈아의 프로필에 대해서 말하겠다.
나훈아는 1947년 2월 11일 부산 동구 초량동에서 출생하였다. 나훈아는 노래를 좋아해 고향 뒷산에서 친구들과 기타를 치며 노닐었는데, 피아노 실력 또한 수준급이다. 가요계에 공식적으로 데뷔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철리길을 발표하면서부터였다. 


나훈아는 1968년에 발표한 사랑은 눈물의 씨앗으로 크게 히트하였으며, 1970년대에 남진과 라이벌이 되었다. 나훈아는 간드러진 꺽기 창법이 매력적이었으며, 당시 침체된 대중음악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나훈아는 차분하고 조용한 노래를 주로 선곡하였었고, 그의 인기가 올라가자 삼성전자의 회장 이건희의 연회에 초청까지 받았다. 이러한 초청에 대해 나훈아는 자신의 공연을 보기 위해 표를 사는 이들한테만 노래를 한다며 거절하였었다. 


나훈아는 공군 전역 후 1976년에 최고의 영화계 여배우 김지미와 결혼 발표를 하여 큰 이슈가되었으며, 김지미의 고향인 충청남도 대전 신탄진에 신혼집을 마련하였다. 이후 가요계에 복귀하여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었으나 김지미와 사이가 나빠져 1982년 이혼하였다. 사실 김지미 이전에 이숙희와 결혼했었고 이혼을 하였으며, 김지미 다음은 가수 출신의 정수경과 결혼을 또다시 했다. 

테스형, 나훈아 노래



나훈아의 대표적 자작곡들은 갈무리, 영영,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홍시가 대표적이며 이들 곡은 서정적이며 슬픈 로맨스틱 분위기를 자아냈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에 위와 같은 히트곡 작곡, 작사 능력은 나훈아를 싱어송라이터의 전설로 만들었다. 데뷔 이후 현재까지 그가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만 해도 800여 곡 이상으로 추정된다.    

테스형, 나훈아 노래


마지막으로 나훈아에 대한 여러 일화를 얘기해 보겠다. 
첫째, 나훈아는 김지미와 이혼할때 이 한마디를 남기며, 김지미에게 전 재산을 넘겼다한다. "남자는 돈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여자는 돈 없으면 살 수 없을 것이다." 
둘째, 나훈아가 앞서 얘기한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의 초청에 거절하며 말한 것은 "나는 대중 예술가다. 따라서 내 공연을 보기 위해 표를 산 사람 앞에서만 공연을 한다. 내 공연을 보고 싶으면 당장 표를 끊어라."라고 했다. 이 일화는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에도 나오는데, 이 일화로 인해 김용철 변호사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나훈아라는 얘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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