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위인

마르셀 프루스트 (ft.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들렌 홍차를 기억하는가?)

728x90

마르셀 프루스트 (ft.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들렌 홍차를 기억하는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프랑스의 소설가이다. 20세기 전반의 소설 중 질과 양 모두에 있어 최고로 평가받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작가이다. 그는 1871년 7월 10일 파리 근처의 오퇴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매우 부유한 파리 의과대학의 교수였으며, 어머니는 유대계 부르주아 집안사람이다. 그의 어머니는 풍부한 교양이 있어 프루스트의 생각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으며, 외가 쪽으로 철학자 베르그송이 있었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다독

위와 같은 풍족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마르셀 프루스트는 9살 때 천식이 걸렸고, 어떤 시기부터 동성애에 대한 습벽이 그의 인생에 어두운 부분을 형성하게 했다. 한편 친구들과 함께 향연이라는 문학 동인지를 창간하게 되면서 문학적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한 프루스트는 세심히 관찰하고 깊이 생각하는 탁월한 지성을 가지고 있었다. 앞서 얘기한 베그르송과의 만남으로 그의 의식은 더 깊어질 수 있었고, 전혀 새로운 개념의 소설을 세상에 내놓기 시작한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

마르셀 프루스트는 북이탈리아를 동경하고 베네치아, 파도바 등을 여행하면서 문학과 예술에도 폭넓은 견문을 쌓았다. 하지만 30대 초반에 부모를 연달아 여의고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된다. 특히 어머니의 사망은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한동안 문학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이후 그의 삶은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사라진 자신의 행복한 기억들을 찾는데에 바쳐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는 38세부터 외부세계와 단절했다. 미세한 먼지와 꽃가루에도 천식발작이 일어났고, 바깥의 작은 소음고 견디지 못해 그의 방은 사방에 코르크를 둘렀다. 프루스트는 밤에만 밖으로 나왔는데, 이는 창작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함이었다. 이때부터 위대한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쓰이기 시작했다. 침대에 엎드린 자세로 총 2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초고를 썼는데, 원고는 끊임없는 수정과 첨삭 작업으로 다 헤진 천조각 같았다. (역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퇴고 과정은 필수이다.)

두꺼운 전집이 부담스럽다면, 그림책으로라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20세기 소설의 혁명이라고 부르는 주된 이유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 인간의 내면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제1권 스완네 쪽으로는 1911년경에 완성했고, 2권 꽃피는 아가씨들의 그늘에가 발간된 것은 1918년이었다. 이 작품으로 이듬해에 공쿠르상을 수상항여 프루스트는 평생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이후에도 폐렴으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는 죽음의 예감과 대결하면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완성을 위한 수도자와 같은 생활을 하였다.

그의 침대위에 널부러진 초고는 이런식일듯

13년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한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누군가 평가하기를 ''한 시대의 역사이자 동시에 한 의식의 역사''이다라고 까지 호평을 했다. 이 소설은 자신의 행복한 유년시절이자, 존재의 바탕을 형성하던 근원적 세계를 기반으로 한다. 즉, 마르셀 프루스트는 무의식적 기억을 통한 회상 기법으로 과거 행복한 시절을 현실 시간 속에 회귀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전반적으로 인물들 간의 대화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많은 부분이 내면에서 일어나는 심리 변화를 서술하는 데에 자칫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거듭 읽으면 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중요한 것을 모두 다 말하고 싶어했다. 이에 그의 책은 그의 삶의 총결산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생각하는 것은 그가 이렇게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세기의 대작을 쓸 수 있는 것이 그가 가져온 고통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인가이다. 그는 30대 초반에 부모님을 잃었고, 동성애의 그늘에 가리어져 있었으며, 천식을 앓고 있어 평생을 고생했다. 내 딴에는 천재적 예술성의 깊이는 고통에 의해 심화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뿐이 아니라 니체나 여타 다른 천재들 또한 불행한 삶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면 나는 정말 행복한 시대에 아무 질병 없이 건강한 삶을 이어가고 있어 그들만큼의 깊이를 가지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도 잠겨본다.

질들뢰즈

차지하고 마지막으로 덧붙여 보는 얘기는 질 들뢰즈가 마르셀 프루스트에 대해 한 말이다. 사실 질 들뢰즈의 문학론 중심에는 마르셀 프루스트가 놓여있다. 이에 들뢰즈는 철학의 사유에서 감각 존재를 창안하는 자를 예술가라고 얘기하며 프루스트를 이의 예로서 들고 있다. 이를 아래에 인용해 보겠다.

프루스트는 어떻게 스스로 감각 존재를 창안했는가? 첫째,프루스트는 재현적인 것들을 단절하고 감각 존재를 세우기 위해 먼저 물질적인 감각적 인상들을 포착하고자 한다. 이는 그의 소설 속 할머니의 죽음 장면 묘사에서 돋보이는데, 여기서 마르셀은 할머니의 죽음 과정을 육체적 역동성으로 포착한다. 즉 스러져 가는 육에 위에 미소만이 남는 형상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작년 프랑스 파리 갔었는데, 또 가고 싶다..

둘째, 앞서 재현적인 것들을 단절한다는 얘기를 했는데, 이를 위해 프루스트는 기억을 블록화 한다. 기억을 블록화 한다는 것은 소설 속에서 마르셀이 어머니와 입맞춤을 하기 위해 계속 애썼던 그 밤을 상기하는 것, 레오니 고모와 함께 먹었던 마들렌과 홍차를 상기하는 것 이런 유년 기억의 블록화를 통해 감각적 구성물들에 골조를 부여한다.

불어도 원활하게 나중 ㄱㄱㄱ

이밖에도 들뢰즈의 프루스트에 대한 사상들이 있다. 위의 것들은 단지 일부만 내용을 발췌하여 내가 이해하는 범위내에서만 몇몇 부분을 재구성한 것이다. 듣기로는 원어로 보면 좀 더 정확한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고, 소설 읽기에서도 더 풍성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데 프랑스어를 몰라 아쉽다. 나는 언어에 욕심이 많다. 어릴 때부터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원어로 읽어야지 했는데, 영어 정복에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다 보니 시작도 못했다. 어서 지금 하고 있는 영어를 숙달시키고 다른 언어들도 공부해보아야 하겠다.

728x90